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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문학의 ‘쓸모’에 관하여

오렌지글사랑 모임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매월 공부해온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된 것이다.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가, 거기에 무슨 마력이 있어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일까.   중학 졸업 후 진학을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였다.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참 막막한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마을 이발소에 들렀다. 그곳에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 한 폭과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 한 편이 걸려있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 괴로운 날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 오리니 / 인생은 언제나 슬픈 것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매월 꼬박꼬박 만나게 되는 그 시 한 편이 가만가만 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온다’는 대목을 되뇌며 힘든 날을 견뎌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만났던 한 편의 시가 지금까지도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문학의 힘이다.   작년에 글사랑 회원 세 분이 수필집을 출간했다. 수필은 자신의 바닥을 내보이는 글이다. 쑥스럽고 부끄럽고 남세스러운 일까지를 빨랫줄에 걸어놓은 일이다.     밑바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남의 밑바닥 얘기를 들으면서 내 밑바닥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야기 속의 나와 내 속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공감하고 감동한다. 밑바닥이 밑바닥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울기 십상이다. 울음은 엉킨 가슴을 풀어주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문학의 힘이다.   쉬운 인생은 없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삶이다. 벼라 별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원망과 미움, 자책과 서러움 등이 차곡차곡 쌓인다. 들끓는 마음의 충동, 불안하고 어두운 자의식을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를 통해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세상이 보이듯, 글을 쓰고 나면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글을 마친 다음 어느 작가는, ‘가슴에 맺혀있던 돌덩이 하나가 쑤욱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글쓰기를 통해 영혼을 위로받고 아픔이 치유되었다는 놀라운 체험을 얘기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독자에게도 위로와 위안을 준다. 문학의 힘이다.   최근,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변론에 나선 변호인들의 주장을 TV를 통해 지켜보았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을 대변하는 모든 변론 중, 장순욱 변호사의 변론이 단연 돋보였다.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을 얘기한 그의 말은 정연하고 담백하고 아름다웠다. 헌재의 최종 결과와는 무관하게, 상대를 설득하여 공감하고 감동시키는데 문학적 표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입증해준 변론이었다. 그의 변론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문학의 쓸모가 어디에 있는가를 일깨워 주었다.   문학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낼 수 있는가. 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그 길을 조곤조곤 안내해 준다. 정찬열 / 시인열린광장 문학 문학적 표현 밑바닥 얘기 오렌지글사랑 모임

2025-03-12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오지다, 지리다

한 인터넷 방송에서 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 중이던 아이돌 스타가 신이 나서 외쳤다. “오지구요, 지리구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오지다’는 두 개의 뜻을 갖고 있다. 첫째,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 둘째, 허술한 데가 없이 알차다. 둘 다 좋은 의미지만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쓰임새를 가려 써야 한다.   ‘지리다’의 뜻풀이는 ‘똥이나 오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싸다’이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썩 기분 좋은 상황이나 표현은 아니다.   사전 뜻풀이대로 아이돌 스타의 방송 표현을 해석하면, 오지다는 표현은 도시가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흐뭇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지리다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은 ‘아주 좋다, 놀랍다, 굉장하다’라는 표현 대신 ‘오지다, 지리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오지다는 비슷한 뜻의 단어라 괜찮지만, 지리다는 새로 만들어진 신조어도 아니고 특별한 의도도 없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밀레니얼 세대의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위 방송을 봤다면 ‘저 예쁜 아이돌 스타는 왜 방송에서 오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쌌다는 얘기를 하는 걸까’ 민망할 뿐이다.   물론 ‘오줌을 지릴 만큼’ 놀라고 굉장했음을 설명하는 문학적 표현도 있다. 문제는 주변 젊은 친구들 중에 ‘지리다’의 뜻과 그 말을 왜 이 상황에 쓰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 남들이 쓰니까 장난삼아 따라한다는 대답이다. 같은 세대끼리 소통과 재미도 좋지만, 적어도 남들 따라 잘못 쓴 말 때문에 민망하고 품격 떨어지는 상황은 만들지 말자. 서정민 /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지리 방송 표현 아이돌 스타 문학적 표현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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